드디어 그날이 왔다. 한 두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퇴근 후에 올 지원이와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희나는 오후에 합세하기로 했고, 먼저 지은이, 수영이와 만났다. 한동안 적당하던 날씨가 갑자기 바람 불고 기온이 내려가는 바람에 엄청 춥긴 했지만, 그래도 좋기만 했다. 대신, 날이 어찌나 화창하고 예쁘던지.

커피가 맛나다는 카페 ALEGRIA COFFEE ROASTERS 에 가보니 실내도 깔끔하고 모던하니 맘에 들었다. 여기서 그간 밀린 소식들 좀 나누고… 특히 업데이트가 안되었던 지은이 얘기 좀 많이 듣고…

점심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백부장집>이라는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서 ‘닭한마리’를 먹었다. 오랜만에 바닥에 털퍼덕 앉아서 먹는 정겨운(?) 식당이었고,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했다. ㅎㅎ 이렇게 푹 고아서 야들야들해진 닭고기 먼저 건져먹고, 칼국수 등을 넣어 마무리로 먹을 수 있는, 단순하지만 뜨끈하고도 맛난 메뉴였다.

천천히 숙소쪽으로 걸어가기로 하고 광화문 거리를 걷는데, 이날이 삼일절이라 그런지, 광화문 저쪽 어디서 집회가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태극기 집회’였던 것 같은데, 처음엔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극우던 극좌던 중립이던, 그건 개인의 선택이니 전혀 상관은 안하겠는데, 정치 집회면 그냥 정치 얘기로 끝내지, 왜 하나님을 들먹이고, 찬송가를 불러대는지, 마이크에 대고 찢어지는 고성으로 ‘할렐루야’를 외쳐대는지, 지금 뭐하는 짓들인지 😡,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나중에 선배 목사님과 얘기를 하는데, 더 위험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이들’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점잔빼고 신앙인의 탈을 쓴 채로 이런 저런 직분을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하는 데, 속에는 예수님이 없는 자들’이라고 하시며, 그런 자들이 더 분별하기 어려우면서도 위험한 자들이라면서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 내가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말, 광화문 거리를 지나면서 괴롭긴 했다. ㅜㅜ

지나가는 길에 경복궁 입구에만 들렀는데, 마침 특별 교대식(?) 같은 행사가 막 시작하려는 참이어서 잠깐 서서 구경했다. 삼일절이라 더 특별했는지, 상당히 화려했고, 이 추운 날 사람들도 엄청 많이 둘러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춥기도 하고 꽤 오래 해서 중간에 나와 경복궁 서쪽의 서촌에 있는 우리 숙소를 찾아 걸어갔다. 경복궁에 여러번 왔었지만, 서쪽은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작고 정겨운 골목들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나타난 우리 숙소, 오복헌! 오피스가 바로 옆에 있는지, 주인(? 매니저?)에게 연락하자마자 옆문에서 나왔고, 금방 열쇠를 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물론 완전 전통 한옥은 아니지만, 한옥 느낌이 나면서도 현대식으로 잘 꾸며놔서 아늑하면서도 편리해 보였다. 우리 다섯이 지내기엔 완전 딱 맞춤같은 사이즈와 공간들.

셋이 먼저 체크인을 2시 조금 넘어 했고 그 이후로 한명, 한명 도착했다. 지원이는 6년만에, 희나는 24년만인가 보다. 희나와는 대학교때 유럽배낭여행도 같이 다녀오고, 미국 시골에서 한 내 결혼식에도 유일하게 와서, 부케까지 받아준 사이인데도, 지금껏 못봤다니 기막힐 정도다. 🥲 짐을 풀면서 두서없이 이리저리 회포를 풀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몇가지 후보식당 중에서, 미쉘린에도 계속 오르고 유명하다는 <할매집>에 줄까지 서서 들어갔는데, (심지어 나는 족발도 못 먹지만, 그래도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족발을 잘 먹는 친구들도 좀 별로라고 할 정도. 그래서 족발은 거의 다 남기고, 다들 감자탕으로 배를 채운 뒤,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나왔다. 하지만 뭘 해도 즐거운 시간들~

경복궁 주변의 밤거리를 잠시 걸었다. 너무 추워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이 시간에 헤어지지 않고 경복궁 근처를 같이 돌아다니다가 같은 숙소로 돌아갈 수 있다니 참…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와 배스킨라빈스에 들러 아이스크림까지 사들고 (도대체 이 추운 날, 아이스크림이라니! ㅎㅎ 그것도 간식 제일 안먹는 최지팔 아이디어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원이가 준비해온 형형색색의 미니 마우스 잠옷 다섯벌을, 색깔가지고 아웅다웅하다가 결국 뽑기로 나눠가진 후 🤣, 모두 갈아입은 뒤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지원이 아들이, 지원이가 얼마전부터 인터넷 검색을 하며, 다섯이 같이 입을 잠옷을 고르고, 주문하고, 도착한 옷 보면서 신나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더니, “최근에 엄마가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 보는 거 처음이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 😭 정자세로 얌전히(?), 예쁘게(?) 찍은 사진들도 수십장 있었지만, 제일 현장감 느껴지는 사진으로 골랐다.

쪼그맣지만 프로젝터도 있길래 음악도 틀어놓고, 잠시 홍이삭 깨알 홍보도 하면서… ㅎㅎ

그리곤 이제야 식탁에 둘러앉아 본격적으로 얘기를 하기 시작하다가 (무슨 얘기들을 했지?? 느낌만 남았네. 😂) 새벽 3시 넘어서야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방이 세개나 있었지만, 잘 때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하하하) 마루와 연결된 방 문을 열어놓고, 다섯이서 쭉 누워 잤다. 마지막 2인이 잠들 때까지 수다는 이어지고…

보기와 달리, 잠자리, 이불 등에 예민한 편인데, 이불들이 정말 새하얗고 깨끗했고, 사각사삭 소리까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바닥에 깔 수 있는 여분의 패드까지 있어서, 등도 배기지 않고 아주 잘~ 잤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 유년시절을 보내게 하시고, 이 나이 될 때까지도 변함없이 만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한 밤이었다.